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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2 - 역사적 인간상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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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 정신과 사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2 - 역사적 인간상 두번째


‘화랑도 정신과 사상‘은 무엇인가?


삼국시대 민족통일의 대업을 성취한 화랑도(花郞徒)는 일찍이 왕가의 뒷받침을 받아 애국정신과 무사정신을 함양 했었는데, 이러한 정신훈련의 계명은 당시 명승이었던 원광법사(圓光法師)에 의해 내려진 화랑의 세속오계(世俗五戒)였다.



이것은 화랑의 세속오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당시의 교육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이었다.


‘평생에 잠언(箴言)이 될 만한 말을 해 달라’는 귀산(貴山, ?~602)과 추항(?項, ?~602)의 두 화랑에게 원광법사는 “불교에서 보살계가 있어 그 조항이 열 가지가 있으나 너희들은 남의 신하와 자식된 몸이니까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세속으로 오계가 있으니 너희들이 이 일을 실천하여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의 세속오계는 불승 원광법사가 내렸다는 점에서 불교 교육의 요소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충(忠), 효(孝), 신(信)이 오륜(五倫)의 세 개의 항목이라는 점에서 유교 교육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라 사람에게 공통된 교육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백제 사람에게도 모두 이와 같은 교육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 교육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교육에다가 중국으로 부터 들어온 불교교육이 배합되고 뒤를 따라 들어온 유교의 교육이 혼융(渾融)되어 우리의 새로운 민족교육을 형성한 것이지 세속오계가 단순히 불교교육이라고만 말할 수 없고, 또 단순히 유교 교육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원광법사 자신이 유학과 도학에 통달하였고 뒤늦게 불법을 배운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강한 주체의식을 가지고 유불선(儒.佛.仙)의 사상을 잘 소화시켜 새로운 민족교육의 계명으로 내 놓은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 충(忠)사상의 정착


세속오계의 사군이충(事君以忠)은 유교의 교육원리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일찍기 고조선부터 주종(主從)간에 충성을 다하는 윤리가 있었는데, 삼국이 성립되면서 부터 중국의 충의 영향을 받아 절대적 군신(君臣)관계의 윤리로 되었고, 뒤에 불교의 호국(護國)사상을 받아들여 더욱 강화되어 충군(忠君), 호국(護國)의 새로운 윤리가 형성 되었다.


원래 중국에서도 충(忠)이 군신간의 절대적 윤리의 성격을 띤 것은 아니었다.


‘임금은 예(禮)로써 신하를 섬기고, 신하는 충(忠)으로써 임금을 섬긴다.’ 고 할 때의 충은 정성을 다한다든가 충성을 다한다는 일반적 의미로 쓴 것이다.


또한 ‘거처할 때 공손히 하고 일을 할 때 공경되이 하고 사람과 사귈 때 충성되이 한다.’ 고 할 때의 충의 뜻도 마찬가지이다. 봉건제도의 권력구조가 강화된 진한 이후 충은 존왕(尊王), 또는 충군(忠君)의 절대적 윤리의 개념으로 되었고, 이 사상이 삼국에 들어와서 중앙집권적 왕권확립에 도움을 주었으며, 또한 불교의 호국성이 강조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에 새로 형성된 충의 개념에는 우리 고유의 충성개념에 유교의 충과 불교의 군주를 주축으로 한 호국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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