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위치 배움 그리고 성장의 고통들 ]

삶의여정 6- 학문하는 자세를 일깨워주다

FCN FM교육방송 심의보 교육·복지제작국 | 편집제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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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

학문하는 자세를 일깨워주다(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홍익대학교 대학원)


청주대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열심히 학업에 정진했으나 교직과 함께 병행한 대학원 수업은 힘에 부쳤다. 첫 학기를 마치고 나는 학업을 따라갈 수 있을 지 고민을 하게 됐다.


휴학을 하고 진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휴학계를 내기 위해 연세대학교 교학처를 찾았다. 아직 미혼이었던지라 어려운 결정에 큰 누님을 동반했다.




그런데 교학처 직원이 놀라운 말을 했다. 성적이 전 과목 A가 나와 다음 학기 장학금 수혜대상이 됐는데 만일 휴학을 한다면 장학금이 취소된다는 말이었다. 장학생이 된 동생의 성적을 확인한 누님은 간곡히 휴학을 만류하셨다.


나도 장학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학업에 대한 자신감이 차올라 휴학을 접었다. 휴학을 하지 않은 덕에 학문탐구의 길이 계속되지 않았을까? 만일 그 때 휴학을 했더라면 학문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져 더 이상 발전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연세대 교수님들의 명강의를 나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공부를 쉬고자하는 마음이 향학열로 바뀌었으니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을 ‘수불석권(手不釋卷)‘이라 한다.


또한 눈을 비비고 상대를 대한다는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상대방의 학식이나 재주가 갑자기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었음을 감탄하는 성어다. 두 사자성어는 오(吳)나라의 장수 여몽(呂蒙)의 일화에서 기인했다.




위(魏)·촉(蜀)·오(吳)로 세력이 나뉘었던 중국의 삼국시대에 여몽이라는 장수가 오나라에 살았다. 가세가 빈한했던 그는 공부를 하지 못해 문맹이었다. 하지만 무술이 빼어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장군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용맹을 높이 산 오나라 왕 손권(孫權)이 여몽에게 책을 읽어 지식을 쌓으라. 충고했다.


여몽이 책 읽을 겨를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자 손권이 간곡히 타일렀다. “일찍이 공자(孔子)께서도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생각만 했는데 얻은 것이 없었다. 차라리 책을 읽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는 군무에 바쁜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하고, 조조(曹操) 역시 늙어서까지도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소. 경은 어찌하여 노력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여몽은 공부하기 시작하여 "후한의 황제 광무제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수불석권), 위나라의 조조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했다"라고 충고했다. 그 말에 뉘우친 여몽은 전쟁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다. 뜻을 돈독하고 부지런한 여몽이 공부에 듯을 품자 섭렵한 책이 옛 유학자들보다도 많을 정도였다.


어느 날 오랜 친구 사이였던 오나라의 재상 노숙(魯肅)이 여몽을 찾아왔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몽은 예전의 여몽이 아니었다. 친구의 박식함에 놀란 노숙이 언제 이처럼 학식을 쌓았는지 물었다. 여몽은 괄목상대(刮目相對)라 자랑했다.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네.“


추헌수 교수의 외교사 강의, 정태동 교수의 정치학 강의, 김만규 교수의 교육학, 후에 교육부장관이 되신 안병영 교수님의 조사론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특히 석사학위 논문 지도 교수를 맡으셨던 이규호 교수님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결혼할 때 청주까지 오셔서 제자의 결혼 주례를 서주신 이규호 교수님은 통일부장관과 교육부장관에 이어 주일대사를 역임하시고, 한국교원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하신 분이다.


‘한국교육개혁을 위한 예비적 연구’라는 제목의 석사학위논문을 아직도 활동하시며 귀한 가르침을 주시는 김형석 교수님과 후에 교육부장관이 된 박영식 교수님이 심사를 하셨다. 1차 논문 심사에서 김형석 교수님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조용히 질문하셨다.


“교육이 목적입니까, 수단입니까?” “교육은 목적이며 한편으로는 수단일 수 있겠다”는 나의 대답에 교수님은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 임을 강조하셨다. 교육은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던 논문심사장에서의 말씀은 평생토록 교육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박사과정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밟았다. ‘한국 청소년의 사회교육 이념 형성과정 연구’라는 제목의 교육학박사 학위논문은 내가 가장 아끼는 학문적 결실이다. 역사적 인간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료를 찾아 분석한 논문이다. 민족의 원류인 고조선, 홍익인간의 이념을 비롯하여 고대 삼국시대의 상무인, 유학인, 화랑인의 고전적 인간상, 고려시대의 호국인과 조선시대의 도덕인, 일제의 애국인을 거쳐 해방 후 민주인을 지향하는 교육이념을 추출해 낸 성과를 두고 교육학계는 업적이라 칭찬했다.


지도를 해주신 김대연 교수님, 심사를 맡아주신 고려대학교 정우현 교수님, 성균관대학교 손직수 교수님, 그리고 서정화, 김용래, 이재창, 김은산 교수님께 감사한다. 원광대학교 장덕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은진 교수, 이미 작고한 조성희 교수, 그리고 후배인 황선조 선문대 총장 등을 홍익대에서 만나 동문이 되었다. 김찬수, 남기석, 신현국, 이강한, 선생님 등 모든 학우가 영원한 나의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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